[이야기 책세상] 역사의 기록자로 남은 ‘명화 속의 인물들’

  • 입력 : 2018.01.31 17: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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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을 보려면 전시회나 박물관을 가야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도 명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무심코 펼쳐든 책이나 뜻하지 않게 본 광고 속에서 또는 신문이나 잡지 속에서도 명화는 모습을 드러낸다.

명화 속에는 풍경이나 정물도 많이 있지만 인물화도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림속의 인물에는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도 풍부하게 전해준다. 예를 들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왕이나 왕비, 혹은 위대한 장군이나 미인들은 그림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도 유명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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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초상화. / 나무위키



황금 백합무늬가 수놓아진 파란색 대관식 망토를 입고 연단 위에 서있는 이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오른손에는 왕홀을, 허리춤에는 대관식용 검, 권위를 상징하는 검은 가발과 황금 목걸이, 이렇게 만 봐도 대단한 사람인 듯 보인다. 이 사람은 바로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을 한 전제군주의 대명사 프랑스의 루이 14세다. 막강한 권력 때문에 태양왕이라고도 불렸으며 자신의 근엄한 모습을 손자에게 보이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는데, 손자에게는 못가고 결국 베르사유의 궁전에 걸리게 된 그림이다.

루이 14세의 권위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베르사유 궁전은 당대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이었고, 명성에 걸맞게 지금까지도 화려함과 웅장함을 뽐내고 있다. 프랑스의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베르사유는 원래 인적이 드문 시골이었다. 여기에 루이14세의 아버지인 루이 13세가 별채를 짓고 사냥하러 올 때마다 잠시 쉬곤 하는 곳이었는데, 어느 날 공금횡령죄로 붙잡힌 재무대신 푸케의 집이 루이 14세의 궁전보다 화려해 새로운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을 내려 짓게 된 궁전이 바로 베르사유 궁전이다. 권위를 과시하기 좋아하는 왕답게 돌 하나 나무 하나 심는 것까지 일일이 자신의 결정을 따르도록 했다.

이렇게 완성된 베르사유 궁전은 유럽 각국의 왕들에게 누구나 갖고 싶은 꿈의 궁전이었다. 훗날 프랑스를 정복한 프로이센(독일제국)의 황제 빌헬름 1세도 보란 듯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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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기로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 / Pixabay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함만큼이나 향기롭기도 유명한 곳인데, 사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목욕을 하면 피부병에 걸린다는 풍문이 돌고 있어서 사람들은 거의 목욕을 하지 않았고, 궁전에는 화장실이 극히 드물어서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몰래 용변을 보곤 했다. 물론 매일 치우기는 했겠지만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이런 냄새와 사람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사용했는데, 프랑스가 향수 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한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한다는 설도 있다. 여자들이 많이 신는 하이힐도 사실은 배설물을 밟지 않기 위해 굽이 있는 구두를 신었는데, 이것이 하이힐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베르사유 궁전의 일화처럼 한 장의 그림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고, 후세 사람들은 당대의 그림을 통해서 역사의 한 순간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가 있다. 그림도 역사의 기록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은 그래서 진실로 다가올 수 있다.



[MK스타일 김석일 기자 / 도움말 : 이여신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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