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이해㉒] ‘색채의 연금술사’ 마티스와 야수주의 작품

  • 입력 : 2018.01.24 15:20:29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현대미술에서는 얼마나 대상을 사실적으로 잘 재현해 낼 것인가의 문제에 앞서, 어떤 방식으로 미술가의 미적 개성과 개념을 전달할지를 관건으로 삼는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현대미술이 태동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하며 생동감 넘치는 색으로 가득 찬 작품을 선보인 ‘색채의 연금술사’다.

1869년에 프랑스 북부 카토에서 태어나 1954년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예술적 영감을 얻었고 강렬한 색을 사용해 리듬과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전 세계 유명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지금도 많은 미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앙리 마티스의 <춤Ⅰ> 전시 전경. / Flickr



마티스는 법률사무소 직원으로 일하다 20세가 다 되어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의 스승 구스타프 모로(Gustave Moreau)는 제자들에게 당시 미술교육 방식과는 차별화되는, 자유롭고 개성 있는 미술을 추구하도록 가르쳤다. 마티스는 마르케(Albert Marquet), 루오(Georges Rouault)를 비롯한 동기들과 함께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개성 있는 작품을 추구했다. 특히 색채를 감각적으로 사용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을 나타냈다.

마티스가 수학하던 시절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대가로 인정받던 시기였다. 그 역시 세잔(Paul Cézanne), 쇠라(Georges Seurat) 등 인상주의 화가들을 동경했다. 초기에는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화풍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작업을 했다. 이후 점차 색채가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고, 드랭(André Derain), 블라맹크(Maurice Vlaminck) 같은 작가들과 교우하면서 강렬한 색채 대비와 단순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앙리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 79.4X59.7cm, 캔버스에 유채, 1905,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소장. / Wikimedia Commons



마티스는 인물, 정물, 풍경 같은 전통적인 소재들을 그렸지만 그 표현 방식은 결코 전통적이지 않았다. 마치 스케치북 위에 색종이를 거칠게 뜯어 붙인 것 같다. 뚜렷한 외곽선으로 그려진 대상은 세부적인 묘사가 절제되어 있어 추상화를 연상시킬 정도다. 원근감이나 양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화면은 오롯이 생동하는 선과 강렬한 색으로 넘쳐흐른다.

마티스는 색채의 연금술사답게 강렬한 색을 잘 사용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빨강과 초록, 주황과 파랑, 노랑과 보라 같은 극명한 대비를 주는 색을 조화롭게 사용했다는 것이다. 보색에 가까운 색들이 한데 모이면 자칫 거부감을 주거나 조악해 보이기 쉽다. 여간 능숙하지 않고서 이러한 색들을 한 데 사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티스는 전형적이지도 않고 사실적이지도 않는 색들을 사용하여 조화롭고 균형 잡힌 화면을 만들어 내는 재능을 가졌다. 색채 대비가 어우러진 그의 작품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색채 사용은 작품에 자유를 부여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마티스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러한 자유를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힘이 느껴지는 과감한 선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색채를 통해 마티스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생동하는 에너지’다. 그의 대표작 <춤>을 예로 들면, 그는 단순히 춤을 추는 사람들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 물결치는 듯한 곡선과 대비되는 색채를 사용해 보는 이로 하여금 춤을 출 때의 흥겨움과 율동감,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1905년 가을,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가던 마티스는 동료인 망갱(Henri Manguin), 마르케, 드랭 등과 함께 <살롱 도톤느>에서 합동 전시를 했다. 일군의 젊은 작가들은 마티스와 같이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출품했다. 이 전시에서 그들의 작품을 본 미술비평가 루이 복셀(Louis Vauxcelles)은 ‘야수들’이라고 혹평했다. 이는 당시 신문 기사로 세간에 전파되었다. 그리하여 ‘야수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1905년 <살롱 도톤느>에서 열린 야수주의 미술 전시에 관한 뉴스기사. / Wikimedia Commons



부정적인 의미에서 ‘야수들’이라는 평을 한 것처럼, 그 당시 대다수가 마티스와 그의 동료들의 작품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은 특히 비난 받았는데, 거친 선과 전형적이지 않은 색으로 그려진 여인 얼굴은 처음 발표되었을 때 가히 충격적인 그림으로 평가되었다.

비평가의 작품평에 의해 그룹이 된 야수주의 미술가들은 애초에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그룹을 결성한 것이 아니었다. 마티스를 중심으로 외관 묘사에 집착하지 않고 열정적이고 감각적인 색채와 형태로 독특한 화풍을 구사했던 일군의 미술가들에 의해 잠시 동안 자연발생적으로 결성되었다가 사라졌다. 이들은 1905년 <살롱 도톤느> 전시를 시작으로 1907년까지 3번의 단체전을 연 뒤 1908년부터는 각자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다.

야수주의 미술가들은 실재하는 모습을 그대로 그리기보다 주관적인 형태와 색채를 최우선했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이러한 특징들은 그들의 첫 전시에서 혹독한 평가를 서슴지 않았던 루이 복셀의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며 인정받게 되었다. 전통을 떠나 새로운 양식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야수주의 미술은 현대미술사에서도 계속 이어지면서, 이후 입체주의와 추상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MK스타일] 글・사진 / 임민영 (아트컨설턴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