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책세상] 인간의 ‘걷기’처럼 완벽한 곡예가 또 있을까

  • 입력 : 2017.12.01 11:4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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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쪽으로 난 발코니를 찾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해보자.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그 몸들은 한 발 앞으로 다른 발을 내밀고, 다시 이 발 앞으로 저 발을 내딛는다. 지금까지 어떤 로봇도 완벽하게 구현해내지 못한 것이 바로 인간 고유의 사소한 동작들이다.

모든 종 가운데 인간만이 서서 이동한다. 우리가 ‘걷는다’고 하는 것은 서서 나아가는 일이다. 원숭이의 손은 매달리는 데 주로 쓰이지만 걷는 데도 쓰인다. 그러나 우리의 발은 손의 도움을 받지 않고 바닥을 딛고 선다.

다시 사람들의 걷는 모습에 주목해보면, 걷기는 추락의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수도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로제 폴 드루아는 자신의 저서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에서 인간의 걷는 행위를 이렇게 표현한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 건 거의 자신을 넘어뜨리다가 균형을 회복하고, 다시 거의 넘어뜨리다가 만회하기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일이다.”

로그를 고안해낸 영국의 수학자 존 네이피어는 ‘걷기’를 독특하게 표현했다. “인간이 걷는 방식은 다른 어떤 활동과도 같지 않다. 걷는 동안 몸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대참사를 가까스로 모면한다.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민 다음, 박자에 맞춰서 얼른 다른 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어야 얼굴이 깨질 위험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몇 걸음을 떼면 우리는 ‘아이가 걷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등산도, 트레킹도, 산책도 즐기지 않는 성인에게는 ‘그는 걷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걷기’를 그 자체로 독자적인 활동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침대에서 소파까지 세 걸음 걷는 일과 몇 시간의 산책과 트레킹은 분명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동수단이 폭발적으로 발달한 현대에 ‘걷기’는 더욱 특별한 활동이 된다. 걷기로의 복귀는 우리를 자연 속으로, 몸의 느린 전진 속으로, 근육과 호흡의 지구력 속으로 끌어들인다. 심오하고 우주적인 리듬을 되찾게 하고 이동의 피로를 느끼게 하며, 어느 고개, 어느 산봉우리를 돌아설 때 문득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보상으로 돌려준다.

철학자들의 생각법에 따르면 ‘걷기’는 심지어 인간의 말하기와 생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걷는 것이 ‘추락과 균형을 반복하며 나아가는 행위’이듯, 우리가 말을 할 때 한 단어에서 다른 단어로 넘어가면서 침묵이 동반되고, 그것이 모여 문장이 되며 의미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도 ‘걷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의 사유 역시 마찬가지로 비판과 합리적인 검토로 항상 비틀거리며 나아간다. 무한한 불균형과 균형 사이를 오가며 더 멀리 나아간다. 이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어떤 기계도 모방하지 못한 분명한 인간만의 특성이다.



[MK스타일 김석일 기자 / 도움말 : 로제 폴 드루아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저자) / 디자인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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