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책세상] ‘구황’작물서 ‘수탈’작물로 -고구마의 추억

  • 입력 : 2017.11.30 17: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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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고, 이곳을 다녀온 유럽인들에 의해 새로운 문물이 전파됐다. 대표적인 식물로는 담배, 고구마, 카카오, 옥수수, 파인애플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고구마는 16세기 이전부터 중국에 들어와 재배가 되기 시작한 작물로, 당시 조선은 명나라로부터 이 고구마 품종을 국내로 들여오지 못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일찍부터 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 상인과 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구마의 재배법을 알게 되어 17세기부터 고구마를 재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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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조선 영조 때 조엄이 일본에서 가져온 구황작물이다. / ⓒ팜파스



조선이 고구마를 알게 되고 처음 들여온 것은 18세기 중엽으로, 영조의 명을 받아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조엄이 일본에서 가져왔다. 당시 조선은 인조, 현종, 숙종, 영조, 순조를 거치며 대기근이 닥쳐 많은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조엄이 일본 쓰시마의 사스나를 방문했을 때 발견한 고구마 종자를 부산으로 가져와 재배를 권했는데, 이것이 조선에 고구마가 들어오게 된 계기였다.

고구마를 처음 들여올 당시 조선의 상황은 몇 해 동안 지속된 가뭄 때문에 굶주림에 지쳐 아이를 버리거나, 먹을거리를 찾아서 도둑질도 마다않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해 임금이나 신하들은 기근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시기에 들여온 고구마를 조엄은 조선의 관료들에게 심기를 권장했고, 이내 영양분도 많고 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구황작물인 고구마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당시 동래부사였던 강필리는 고구마에 반해 이를 재배하고 수확, 보관하는 방법을 설명한 <감저보>까지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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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가 구황작물이었지만, 관리들의 수탈 때문에 백성들은 오히려 고구마 심기를 꺼려했다. / Pixabay



대기근의 효자식물인 고구마가 널리 알려지면서 구황작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고구마가 전래된 지 30년이 지난 정조 때 호남 위유사였던 서영보는 백성들이 고구마 심기를 꺼려한다는 보고를 했다.

이유는 탐관오리와 아전들의 수탈 때문이었다. 백성들에게 엄청난 양의 고구마를 수확하게 하거나, 수확한 고구마를 전부 수탈해가는 일까지 생기자 백성들은 오히려 고구마의 재배를 꺼릴 수밖에 없었다. 백성을 구하기 위해 들여온 고구마가 상품작물이 되어 돈 있는 사람만 먹을 수 있는 상품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다양한 품종 개량 등을 통해 건강식으로, 또는 영양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구마. 하지만 기근에 시달리던 당시의 조선 백성들에게는 구황작물이면서, 동시에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아픔의 식물’로도 기억되고 있다.



[MK스타일 김석일 기자 / 도움말 : 송영심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 속 조선야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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