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책세상] 60년을 이어온 ‘전설’ - 전혜린과 학림다방

  • 입력 : 2017.08.09 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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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통의 커피숍, ‘비엔나 커피’로 유명하고 주말에는 줄 서서 들어간다는 대학로 학림다방, 그곳에는 예술과 낭만의 아이콘이 된 한 여성의 전설이 숨 쉬고 있다.

전혜린, 그녀는 1960~70년대 청춘들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전혜린 현상’이라는 말까지 탄생시킬 정도로 당시 청년들 사이에서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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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커피로 유명한 대학로의 학림다방. ⓒMK스타일 / 그림 ‘ 스케치북 들고 떠나는 시간여행’ 중에서



독일문학 번역가이자 수필가였던 그녀는 수학을 0점을 받고도 타과목 점수만으로도 서울대 법대를 차석으로 입학한다. 25살의 나이에 서울대에서 강의했다는 이력도 그녀의 총명함을 보여준다.

집안도 유복해 살기 어렵던 1950년대 중반에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로 독일 유학도 떠났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에는 독일문학을 번역하고 성균관대 조교수로 부임하는 등 최연소,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며 출세가도를 달린다.

총명함, 천재, 여성 최초는 모두 그녀의 몫처럼 보였고, 사람들은 그녀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점점 더 불안해 보이고, 글 속에는 열정과 광기의 색이 선명해지게 되고, 급기야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하나둘 남기게 된다.

무엇을 두려워했던 것일까? 그저 인간의 내면으로 한없이 들어가 의미를 찾고자 했고, 기존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외적인 껍질을 벗어던지고 완전한 정신세계에서 살고 싶어 했던 전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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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커피로도 유명한 학림다방은 때로는 문학과 예술을, 때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던 청년들의 아지트였던 곳이다. ⓒMK스타일 / 그림 ‘ 스케치북 들고 떠나는 시간여행’ 중에서



그녀는 자신의 욕구대로 살지 못하는 현실에서 무한한 결핍을 느낀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1965년 1월 10일 일요일. 전혜린은 결국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31세의 짧은 생을 마친다. 죽기 전날 학림다방에서 만난 절친 이덕희에게 “세코날(수면제) 마흔 알을 구했어. 하얀 색으로.”라고 말하며 기뻐했다는 전혜린.

비범함을 넘어 광기에 물들던 그녀는 권태로운 삶을 경멸하다 미스터리한 죽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남긴 습작 글들을 펴낸 유고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당시 청년들이 열광하며 보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클래식이 흐르는 가운데 매캐한 담배연기가 학림다방 안을 메우면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는 더욱 단란해진다. 김민기, 김승옥, 이청준, 천상병 등 수많은 예술인과 문학인의 체취가 배인 이곳에서는 언제나 예술과 사랑, 낭만의 이야기가 넘쳐흘렀다. 때로는 문화와 예술을, 때로는 민주주의를 외치던 청년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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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다방. 클래식한 멋과 낭만의 이야기를 나누는 예술인들의 아지트. ⓒMK스타일 / 그림 ‘스케치북 들고 떠나는 시간여행’ 중에서



이곳에 오면 전혜린은 어쩐지 더 그리움에 취하곤 했다.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스카프를 두른 채 앉아 시간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을 학림다방은 기억한다. 이곳의 분위기가 자신이 유학했던 독일 뮌헨의 슈바빙 거리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곳은 그녀에게 내재된 결핍을 채워준 환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내면은 광적이었으나 겉으로는 감정표현이 적었던 그녀의 영혼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곳이었다.

욕망과 수용 사이에서 끊임없이 분투하다 떠난 비운의 천재 전혜린. 학림다방에는 전설이 되어 잠든 그녀의 흔적이 금방이라도 묻어나올 것만 같다. 그래서 오늘도 서울 대학로 거리의 모퉁이에는 그 시절의 낭만을 느껴보는 시간여행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MK스타일 김석일 기자 / 도움말 : 엄시연 (‘스케치북 들고 떠나는 시간여행’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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