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남도 기행] 정약전-최익현 등 역사가 숨쉬는 섬 - 흑산도 ②

  • 입력 : 2017.08.04 13:19:30   수정 : 2017.08.04 13: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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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의 가장 먼바다에 자리한 흑산도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해산물은 물론이고, 다양한 역사적 흔적과 기념물들을 간직하고 있는 자연공원이다. 특히 곳곳에 남아있는 역사적 기념물들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섬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흑산도는 실학자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정약전은 이곳에서 물고기와 해양생물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지었다. 자산기념관은 정약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전시관으로, 흑산도 주민들의 도서관 기능도 겸해서 지난 2002년 건립되었다.

사리마을은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손암 정약전’이 유배 뒤 거주했던 마을이다. 이곳은 흑산도 유적지 탐방장소 중 가장 손꼽히는 명소이며, 사리마을 해안가의 풍경은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운 어촌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한국의 소렌토라는 애칭도 얻고 있다

사촌서당은 정약전이 유배시절 거처지 사리마을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다. 현재의 서당 건물은 1998년 신안군에서 복원한 것으로, 2009년에는 주변이 유배문화공원으로 꾸며졌다. 유배문화체험장(유배인 안치 가옥), 사촌서당, 손암정, 전통주막, 유배인 안내 비문 등이 조성되어 있다.

또 천촌마을 입구에는 조선 고종 때의 문신이자 항일의병장이었던 면암 최익현의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는 최익현의 글씨가 새겨진 지장암(指掌巖)과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가 남아 있다. 면암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는 상소로 인해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그 뒤 의병 활동으로 대마도에 유배된 뒤 단식 끝에 순절했다.

흑산도는 홍어로 유명한 곳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고래잡이로도 유명했다. 1916년에는 흑산도 예리에 ‘대흑산도 포경근거지’가 설치되어 고래잡이에 종사하는 일본 어민들이 상주했고 이 일대에 일본인 어촌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예리항 일대를 지금도 ‘고래마당’이라고 부른다.



[MK스타일] 글•사진 / 이강인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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