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자기 여행 ➀ - 독일] 300년 전 조선 청화백자가 모태

  • 입력 : 2017.06.07 16:06:34   수정 : 2017.06.07 16: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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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독일 하면 맥주 혹은 자동차 등이 연상된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독일은 도자기의 나라다. 독일의 오래된 성이나 궁전에 가면 으레 접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도자기 제품이다. 전통문양의 도자기부터 현대적인 감각의 식기들과 아기자기한 피겨린까지, 궁전 구경을 왔다가 어느새 숍에 진열된 도자기 제품을 만지작거리게 된다. 독일에 이러한 도자기 문화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그 뿌리는 삼백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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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와 공격, 단절의 상징인 ‘칼’이 도자기의 상징이 되어 지금까지 최고의 명품 도자기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 유럽도자기의 모태, 마이슨

유럽에 청화백자가 소개된 것은 17세기다. 대항해 시대인 당시, 유럽의 상선은 세계로 뻗어 나갔고 동양의 문물이 본격적으로 유럽 사회에 소개가 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청화백자는 유럽의 왕실에서 사로잡는 워너비가 되어 고가로 유통되었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작센 주의 군주, 아우구스트 1세는 청화백자 생산을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1708년 베를린 출신의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가 청화백자 제작을 성공한다. 이후 1710년 마이슨에 유럽 최초의 도자기 공장이 만들게 된다. 이렇게 유럽 최고의 도자기 메이커 중 하나인 마이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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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슨 도자기 박물관은 전시실 입구에 청화백자 작품을 배치했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 독일의 청화백자, 쯔비벨무스터

18세기 초에 시작한 유럽의 도자기는 청화백자를 모방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청화백자의 푸른 색과 동양식 문양은 당시 도자기의 주요 문양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럽을 대표할 청화백자는 쯔비벨무스터다. 쯔비벨무스터 역시 동양 도자기의 문양을 따라 만들었다. 독일어로 ‘쯔비벨(Zwiebel)'은 양파를, ‘무스터(Muster)’는 문양을 의미한다. 따라서 쯔비벨무스터는 ‘양파문양’이라는 말이지만 쯔비벨무스터의 실제 문양은 양파가 아니라 동양 도자기에서 흔히 쓰였던 석류꽃이다.

유럽도자기는 동양의 청화백자에 사용된 대나무, 배, 석류꽃, 연꽃 등을 짜깁기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문양을 탄생시켰고, 이것이 양파꽃과 비슷하다고 해서 쯔비벨무스터가 된 것이다. 유럽 사람들은 이 동양적 문양을 좋아했고 수많은 유럽도자기와 타일 등에 사용하게 된다.

▶ 유럽도자기의 뮤즈 ‘조선의 청화백자’

유럽도자기가 동양의 청화백자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중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중국 도자기였지만 17세기 명청 교체기 청나라의 쇄국정책으로 인해 중국 자기의 수입이 여의치 않자 베트남과 일본으로 수입선을 변경하게 된다. 그렇게 일본의 아리타 도자기가 유럽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도 작센의 군주 아우구스트 1세는 아리타 도자기를 선호했다. 아우구스트 1세를 사로잡은 아리타 도자기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붙잡혀간 조선의 도공의 손에서 탄생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마이슨의 쯔비벨무스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정작 조선의 청화백자가 아닐까 싶다. 독일 드레스든 박물관 입구 안쪽 벽에도 다음과 같은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일본 도자는 조선 도공 이삼평으로부터 시작됐다.”

독일은 수많은 가도가 있다. 그중에서도 하얀 금을 볼 수 있는 가도가 있다. 바로 바이에른 주의 도자기 가도이다. 바이에른 주는 작센 주 바로 아래 있는 지역이다. 아름다운 중세 도시 밤베르크(Bamberg)에서 시작해서 북쪽으로 코부르크(Coburg), 테타우(Tettau)를 거쳐 체코 국경 쪽으로 호프(Hof), 젤프(Selb), 바이덴(Weiden) 그리고 바이로이트까지의 길이다.

바이에른 주는 복쪽과 동쪽에는 바이에른 숲, 보헤미안 숲 등 삼림지대와 높지 않은 산이 이어진다. 이 사이로 남부 지역에는 도나우 강이 북부 지역에는 마인 강과 그 지류가 관통하며 유역의 여러 분지에 도시들이 발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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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첸로이터의 현란한 황금빛 자기 세트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 로코코 스타일의 도자기, 화려함의 극치

뮌헨은 ‘맥주의 도시’다. 9월 말 열리는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때문이다. 더불어 뮌헨은 님펜부르크 도자기의 고장이기도 하다. 1747년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 시절 노이데크성에 세운 왕립 도자기 공장이 그 출발점이다. 초반 독자적인 자기 제작에 실패하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J .링글러를 초대하고 나서 공장 설립 7년 만인 1754년에 성공한다. 그 후 도자기 공장을 현재 궁전이 있는 곳으로 옮겨 대대적인 제작에 들어간다.

님펜부르크 도자기의 명성을 초기에 확립한 사람은 프란츠 안톤 부스텔리로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다. 그는 로코코 양식의 도자기를 정착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다. 특히 그의 피겨린 작품은 독특한 우아함 속에 역동적이고 위트 넘치는 인물들을 묘사하고 있다. 40세 요절한 그의 뒤를 이은 인물로는 체코 출신 도미니크 아울리츠제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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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델프트 타일로 벽을 완성한 파고덴브르크의 거실. 도자기 산업의 발전은 타일과 피겨린 등 요업 사업 전체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진 ‘유럽도자기여행’ 중에서>



그는 교황 클레망 13세로부터 ‘황금 격려상’을 수상할 정도의 재능 있는 예술가였다. 님펜부르크 도자기는 이렇게 당대 가장 뛰어난 인재를 영입함으로서 왕립 도자기 제작소의 명성과 영예를 이어간다. 이후 루트비히 1세의 통치기 이후 바이에른의 국력이 쇠퇴하면서 님펜부르크 도자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후 1887년, 보이믈 가문이 공장을 경영하다 1975년에 다시 바이에른 주 정부로 경영권이 넘어간다. 이후 2011년에는 바이에른의 마지막 왕, 루트비히 3세의 증손자 루이트폴트 왕자가 인수하면서 원래 주인이였던 비텔스바흐 가문으로 넘어간다.





[MK 스타일 주동준 기자/ 도움말 : 조용준 (‘유럽도자기여행’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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